천재 연주가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처세술

20세기초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가들중 한 사람으로 인기를 누렸는데 그의 명성은 고명한 작곡가들의 잃어버린 고전 작품들을 유럽의 수도원이나 여러 도서관을 직접 뒤져서 찾아내고 세상에 최초로 공개하며 직접 연주해 청중들을 매료시킨 것이 큰 작용을 했다고 한다.

1875년 2월 2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그는 비엔나와 파리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1888년에 미국을 방문해 1년간 투어를 돌며 공연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어려서부터 소망하던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위해 시험을 봤으나 낙방하고 말았고 그때 음악가로써의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음악을 청산하고 의학공부를 하다 포기하고 화가가 되려다 포기하며 몇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그는 어느날 자신이 유명 작곡가 푸냐니의 잃어버린 명곡을 찾았다고 주장해 음악계 원로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그의 주장을 믿지못해 그가 찾았다는 곡을 직접 연주해보라고 요구한 원로들은 그가 열심히 연주한 퓨나니의 명곡이 진품 임에 감탄하며 그를 격려하고 세계에 새 퓨나니의 작품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원로들에게 자신의 바이올린 연주 솜씨를 보일 수 있었던 크라이슬러는 더 나아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도서관과 사원 등에 묻혀있던 비발디와 타르티니 등 유명 작곡가들의 잃어버린 고전 작품을 찾아내 원로들과 음악계 인사들 앞에서 작품을 직접 연주하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는 그같은 공로로 신문에 보도됐고 잃어버린 명곡을 발굴해 연주하는 탁월한 기교를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마침내 세계의 주목을 받고 바이올린 연주가로 실력이 세계 최고임을 인정받은 그는 초기에 입단을 원했다가 좌절된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보다 훨씬 유명한 연주가가 됐는데 그는 세계를 투어하며 명성을 떨치다 60세 생일을 축하하는 전보를 보낸 뉴욕타임즈 음악 평론가 올린 다운스씨가 농담으로 혹시 유명 작곡가들의 잃어버린 명곡들을 본인이 직접 작곡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자 맞다는 답장을 보내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놨는데 그는 당시 자신이 바이올린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직접 작곡한 곡을 유명 작곡가들의 잃어버린 명작이라고 속였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후 세계 음악 애호가들과 비평가들은 그가 퓨나니와 비발디, 타르티니 등의 이름을 팔아 스타가 된 것을 비난하기도 하고 그를 극찬하며 격려하기도 했는데 결국 새로 발표된 잃어버린 고전들은 그의 작품으로 작곡가 이름이 바뀌었고 그는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다 1962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는데 그는 최고의 천재 연주가와 훌륭한 명곡을 작곡한 작곡가로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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