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갱스터 피프티 센트는 누구였나?



(그림설명: 영화 CB4의 포스터)

1993년에 개봉된 코미디 랩 영화 CB4는 1990년대 초 빌보드 차트를 휩쓴 갱스터 랩 장르를 패러디한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앨버트와 유리피데스, 그리고 오티스 등 3명의 오랜 친구들로 구성된 무명 아마추어 래퍼 그룹이 유명세를 타기 위해 감옥에 투옥된 당대 이름난 갱스터이며 나이트클럽 오너인 '거스토'의 이름과 이미지를 빌려 갱스터 래퍼로 대성공한다는 스토리다.

영화에서 앨버트가 자신을 MC 거스토라고 부르며 갱스터 랩 그룹 이름을 감방의 특정 구역을 뜻하는 CB4(셀 블록 4)라고 이름 짓자 분노를 참지 못해 감옥에서 탈출하여 앨버트를 혼내주지만 다시 체포돼 감옥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와 무척 유사하게 실제로 성공한 갱스터 래퍼가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래퍼로 성공한 피프티 센트(50 Cent)다.



(그림설명: 원조 50 센트 - 켈빈 마틴)

미국의 흑인 스트리트 갱단에는 OG라는 호칭이 존재한다. OG는 오리지널 갱스터의 줄임말로 갱단의 창단 멤버나 갱단에서 오리지널하게 악명을 떨친 고참 멤버에게 붙여주는 이름이다.

갱단들이 설치는 대도시 주민들은 OG로 불리는 갱스터에게 심한 공포와 심리적 위협을 느끼는데 OG 랭킹은 이태리 마피아의 '메이드 맨' 랭킹과 유사하다.

피프티 센트의 본명은 커티스 잭슨이다. 1976년 뉴욕 퀸즈에서 태어나 불우한 소년 시절을 지낸 그는 한 때 마약상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나 친구 집 지하실에서 랩송을 만들며 래퍼로 활동하다 피프티 센트라는 뉴욕에서 악명을 떨치다 총을 맞고 의문의 최후를 맞은 OG의 이름을 빌려 래퍼로 데뷔했다.

원조 피프티 센트 켈빈 마틴은 뉴욕 브롱스가에서 암약한 악명 높은 갱스터로 총을 24번이나 맞고도 죽지 않은 불사조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적어도 30명을 살해했지만 검거되지 않은 연쇄살인마였고 때때로 화려한 장신구를 몸에 걸치고 다니는 래퍼들을 쫓아다니며 권총으로 위협해 그들의 장신구들을 빼앗고 다른 갱스터들의 현금과 장신구까지 강탈해 악명을 떨쳤다.

그는 1987년 총상을 입은 채 발견돼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그의 살해 사건은 영구히 미결로 남았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가 갱단 '수프림 팀' 멤버의 현금과 장신구를 강탈했다가 보복당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림설명: 수프림 팀 갱단 두목 키니스 '수프림' 맥그리프)

수프림 팀은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마약밀매 갱단이었다. 두목은 자신을 수프림이라고 부른 키네스 맥그리프로 주당 20만 불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마약밀매로 벌어들였는데 눈에 거슬리는 인물들을 가차 없이 살해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1987년 수프림은 불법 갱단을 조직해 범죄를 자행한 혐의로 재판에서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94년에 가석방됐으나 가석방 법규를 위반해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가 1997년에 출소했다.

커티스 잭슨이라는 뉴욕 청년이 악명 높은 OG 피프티 센트 이름으로 래퍼로 데뷰했다는 소식을 들은 수프림은 그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그가 OG 이름만 빌리지 않고 자신이 OG인양 랩을 하며 콜롬비아 레코드社와 계약을 맺고 처음 제작한 앨범 '파워 오브 더 달러'에 포함된 게토 코란이란 랩송에 자신의 호칭 수프림을 거론한 것을 발견하고 분노했다.

끝내 분을 참지 못한 수프림은 피프티 센트를 죽이라고 지시해 2000년 5월 24일 집에서 나오는 그를 기다리고 있던 OG 데럴 바움이 9mm 총탄을 9발이나 발사했으나 죽이지 못했다. 피프티 센트는 병원으로 후송돼 극적으로 살아났다.

데럴 바움은 피프티 센트를 죽이는데 실패했기 때문인지 총격 사건 3주만에 피살됐고 콜롬비아 레코드사는 수프림이 피프티 센트가 부른 랩송 때문에 분노한 사실을 알고 앨범 발매 계획을 취소했다.

수프림은 미국의 전 레코드사에 피프티 센트의 음반을 절대 취입하지 말라고 협박했는데 이 때문에 그는 앨범을 출시할 수 없었으나 전설적인 랩 그룹 런-DMC의 DJ 잼 마스터 제이가 새로 설립한 레코드사가 그를 영입해 본격적으로 랩송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프림은 자신의 말을 거역한 잼 마스터 제이를 제거하도록 지시해 결국 잼 마스터 제이는 2002년 10월 30일 총탄에 살해됐다.

미결로 처리된 잼 마스터 제이의 살인사건 발생 후에도 래퍼로 활동을 계속 한 피프티 센트는 2002년 최고 정상 래퍼 에미넴이 전설적인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닥터 드레를 소개해줘 2003년 2월 6일 첫 앨범을 출시했다. 그는 악명 높은 수프림에 대항했다가 9번이나 총탄을 맞은 갱스터 래퍼라는 강한 이미지가 부각되며 명성을 떨치고 세계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언론과 잡지, 미디어들이 그에 관해 보도한 뒤 첫 앨범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고 그의 랩송 '인 다 클럽'은 라디오 역사상 1주 만에 가장 많이 플레이된 노래 기록을 세웠다.

수프림은 2007년 2월 1일 '이-머니백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랩퍼 에릭 스미스와 그의 친구 트로이 싱글톤을 살인 교사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감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림설명: 억만장자가 된 피프티 센트)

피프티 센트는 오늘날 세계적인 톱 래퍼로 성장했고 비디오게임과 영화, 광고 등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포뮬라 50 드링크의 모델로 출연하며 글라세우社의 주식 지분을 받았는데 2007년 코카콜라가 글라세우를 41억불에 인수하며 주식 양도로 세금 공제한 현금 1억불을 받아 억만장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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