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의붓형과 결혼한 아일랜드의 여인 이야기



(그림설명: 히틀러의 의붓형과 결혼한 브리젯 다울링)

1972년 대학교의 유럽 현대사 프로젝트로 히틀러의 숨겨진 가족 사항을 연구하던 뉴욕 대학의 학생 에드 워드는 우연한 기회에 히틀러의 의붓형 부인인 아일 랜드계 여인 브리젯 히틀러라는 이름을 조회하다 뉴욕
도서관에 오래전 그녀가 익명의 역사학자와 함께 책을 집필하다 노환으로 사망하여 도서관에 기증한 정체불명의 저서 원본을 접하게 됩니다.

'나는 히틀러의 형과 결혼한 사람'이라는 문제의 책을 읽고 경악을 금치못한 에드워드는 책안에 있는 내용이 놀랄만한 사실로 꽉 차있어 이를 뉴욕타임즈에 제보 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 거주하던 오스트리아계의 이민자 알로이스 히틀러와 결혼한 브리젯의 이야기중 일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림설명: 1900년대초 영국으로 이민간 히틀러의 의붓형 알로이스)

1909년 영국에서 1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더블린 호스 대회에서 대회에 참가한 말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17살의 여인 브리젯 다울링은 그곳에서 오스트리아의 이민자인 알로이스 히틀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달간 알로이스와 데이트를 하던 알로이스는 그녀와 결혼을 하려 하였고, 오스트리아인에게 딸을 주기 싫어한 브리젯의 부모는 호텔사업을 하고 있다는 알로 이스가 사실은 호텔 식당의 웨이터였다는 사실을 알고 불호령을 내린뒤 결혼을 절대 반대하였습니다.

그후 알로이스와 함께 런던으로 도주한 브리젯은 런던 에서 직장을 가져 알로이스와 맞벌이로 돈을 번뒤 패트릭이라는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패트릭의 뒷바라지를 위해 리버풀시로 이주한 그들은 작은 식당을 경영해보다 재정난을 겪자 오스트리아에 있는 자신의 친척 안톤 루발을 리버풀시로 불러 식당을 동업하려 하였습니다.

1912년 11월, 안톤 루발이 리버풀시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리버풀시의 기차역을 방문한 브리젯은 분명 중년 신사로 알고있던 루발이 젊은 청년이었던것을 보고 의아해 하였습니다.

그때 청년의 모습을 보고 놀란 알로이스는 청년과 함께 독일어로 말다툼을 하기 시작하였고, 주위 사람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두 사람을 쳐다보는 모습을 본 브리 젯은 부끄러워 혼자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림설명: 1차세계대전중 촬영된 25살의 히틀러 사진)

그후 집에 젊은 청년을 데리고 온 알로이스는 '화가 동생 아돌프'라고 말하며 부인에게 자신의 의붓동생을 소개시켜줬고, 알로이스를 혼자불러 왜 동생과 말다툼을 했냐고 물어본 브리젯은 동생이 당시 오스트리아군 에서 탈영해 18개월간 도망자 신세로 숨어지내다 영국에 밀입국을 하였다는 사실을 털어놔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때서부터 알로이스의 일가족과 함께 생활한 23살의 아돌프는 서투른 영어로 자신의 조카인 패트릭과 함께 집안에서 놀다 런던시를 구경가게 되었으며 도시 곳곳에 있는 궁전과 사원등 옛 건축물들을 구경한 그는 같이 동행한 브리젯에게 자신이 비엔나 대학의 한 유태인 대학교수 때문에 대학에서 쫓겨났다고 말하며 매우 불쾌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다 옆집에 살던 점성술사인 프렌티스 부인을 만난 아돌프는 자신의 미래가 걱정 되어 프렌티스 부인으로부터 미래풀이를 듣다 자신이 엄청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 집안에서 점성학을 공부하고 패트릭과 놀아준 아돌프는 그를 식충으로 생각한 알로이스가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라고 권유하자 집에서 쫓겨나다 시피 오스트리아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1913년 오스트리아에 돌아온 아돌프는 후에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성장하였고, 아돌프의 출세후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알로이스의 가족은 오스 트리아에서 귀족과 같은 생활을 하다 패망후 절망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설명: 1차세계대전중 전쟁터에서 히틀러가 그린 그림)

브리젯 히틀러가 저술하였다는 문제의 책은 진품 이었을까요?

오늘날 히틀러의 인생에 공백기간으로 남은 1912년 부터 1913년간의 생활은 문제의 책이 저술한대로 영국에서의 생활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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