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소형 핵무기 제조에 쓰이는 빨간 수은 이야기



(그림설명: 핵무기 재료를 훔쳐 암시장에 팔려다 체포된 구소련의 엔지니어)

1973년 미국의 초소형 전술 핵지뢰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구소련은 현재까지 개발된 전술핵 관련 무기 보다 작고 강력한 신무기를 만들기 위해 전국에 있던 과학자들을 모스코바로 소집하였습니다.

1975년 브리프 케이스만한 전술 핵가방을 만드는데 성공한 구소련은 핵가방을 시한폭탄, 핵지뢰등 여러 방면에 사용할수 있도록 디자인 하였고, 매년 구소련의 무기를 구매하던 제 3국들은 크기가 크고 항상 서방의 위성에 의해 감시되고 있는 핵탄두 대신 구소련이 새로 만들었다는 핵가방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소련측은 문제의 핵가방이 테러등에 사용될때 피해가 엄청날수 있다며 이를 수출하지 않았으나, 1977년부터 동유럽의 암시장에는 핵가방을 만드는데 쓰이는 모든 재료들이 비밀리에 유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림설명: 미국이 만든 핵지뢰의 분해도)

만년필 크기의 콘테이너에 들어가 있는 농축된 플루 토늄, 핵 융합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전자뇌관, 그리고 핵가방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라는 빨간 수은 등은 암시장에 공급 되자마자 빠른 속도로 제 3국들 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1977년, 문제의 빨간 수은이 암시장을 돌아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한 미국의 정보국은 구소련에게 쿠바 미사일 사태이후 처음으로 가장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 하였고, 핵가방을 만드는 재료가 암시장에 돌고있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당시 구소련 서기장은 수사력을 총동원 하여 구소련에서 유통되던 모든 핵가방 재료들을 철저히 조사할것을 명령하였습니다.

그때서부터 더이상 빨간 수은을 구입할수 없던 아랍의 테러국들과 아프리카의 내전국등은 미국도 자체개발에 의해 빨간 수은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원정간뒤 '빨간 수은이 자국의 돈을 더 빳빳하게 코팅
하는데 필요하다', '빨간 수은으로 자국의 금고에 있는 금 덩어리들을 코팅하면 금이 더 반짝이더라'며 미국측에 로비활동을 벌이던중 모두 체포되어 빨간 수은의 구입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림설명: 미 육군의 핵지뢰 가방)

하지만 소련이 붕괴된 1991년, 쿠테타에 의해 군의 체계가 붕괴되어 혼란스러울때 지하에 보관되고 있던 빨간 수은 수십톤을 암시장에 유통시킨 일부 군인들은 킬로그램당 15만불에서 35만불의 가격표를 가지고 있던 빨간 수은이 제 3국들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팔려 순식간에 재고가 바닥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깜짝놀란 미국측은 러시아측에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표명을 전하였고, 그때서부터 빨간 수은의 제조를 중지한 러시아는 이미 다른 국가들로 유출된 수십여톤의 빨간 수은을 다시 찾아올수 없어 빨간 수은에 관해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그런 화학재료는 러시아에서 만든적이 없다'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1991년 불가리아와 1992년 우크라이나, 그리고 폴란드등에서 빨간 수은을 팔던 핵관련 암시장 단원 들이 경찰에 체포된 소식이 뉴스에 방영되면서 일반
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빨간 수은 이야기는 1992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국영 TV 기자들이 몰래 카메라로 찍은, 암시장에서 빨간 수은을 직접사는 장면이 서방 뉴스에 공개되자 그때까지 소문으로만 돌던 빨간 수은의 존재가 사실상 확인되어 세계를 경악케
하였습니다.



(그림설명: 암시장 밀거래 품목중의 하나인 이동식 미사일)

빨간 수은 소식이 세계로 퍼진뒤 이를 빨리 구입하려한 제 3세계 국가들은 암시장에서 몇천만불을 주고 구입한 빨간 수은이 빨간물을 들인 아세톤이였다는 것을 알고 사기를 당했음에 허탈함을 금치 못하였다고 하나, 그들은 1991년 러시아에서 유출된 문제의 빨간 수은 수십톤중 대부분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은 처리공장으로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남아공 으로 몰려가 고가에 엄청난 분량의 빨간 수은 진품을 사재기 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제 3국들로 유출된 수십여톤의 빨간 수은은 과연 어디서 무엇에 쓰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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