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 투탕카멘의 피라미드 발굴과 저주 이야기



(그림설명: 왕의 무덤에서 카터씨과 함께 있는 카나본 경)

1922년 11월 26일 투탕카멘 왕의 피라미드 무덤을 발견하고 발굴작업을 지휘하던 영국의 고고학자 하와드 카터씨는 투탕카멘 왕의 관을 비롯하여 무덤안에 있는 유물들이 3000여년전에 만들어졌다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히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1919년경 금덩이가 벽돌같이 쌓여있다는 소문을 듣고 피라미드에 침입한 도굴꾼들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이 되었다는 왕의 무덤은 무덤 밖에 새겨져 있던 고대 문양을 본 도굴꾼들이 모두 겁에질려 도망을 가는 바람에 무덤 내부에 있는 유물들이 보존되었습니다.

1922년 왕의 무덤을 방문한 카터씨는 같이 동행한 아랍계 발굴대원들중 상당수가 무덤밖에 쓰여진 고대 이집트어가 풀이되자 겁에 질려 밖으로 뛰쳐 나가는 모습을 보았고, 죽음의 저주 경고글을 무시한뒤 무덤을 부수고 들어가도록 지시한 카터씨는 발굴대원들에게 죽음의 저주란 있을수 없는일이니 안심하고 작업에 임하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림설명: 왕의 무덤에서 가져온 돌의 문양을 읽고있는 카터씨)

하와드 카터씨의 발굴은 당시 영국에서 상당한 힘을 가졌던 귀족 카나본 경에 의해 후원되었고, 카터씨과 함께 이집트에 남아 보물을 영국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던 카나본 경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면도를 하다 모기가 물은 부분에 상처를 낸뒤 앓아누워 몇일간을 고생하다 사망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카나본 경이 숨을 거두는 순간, 이집트 카이로시 전체가 순간적으로 정전이 되는 모습을 본 그의 측근들은 혹시 카나본 경이 숨을 거두게된 이유가 투탕카멘 왕의 저주가 아니었냐고 의아해 하기 시작하였고, 카나본 경이 숨을 거둔 동시 영국 에서는 카나본 경의 저택 안에서 돌아다니던 그의 애견 수지가 방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기괴한 울음소리를 낸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카나본 경이 사망한뒤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투탕
카멘 왕의 저주에 관한 이야기는 곧바로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때서부터 미이라는 공포스러운 전설적인 이미지로 군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설명: 1907년에 처음으로 이집트에서 발굴작업을 시행한 카터씨)

카터씨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했다는 뉴스를 접한뒤 최초로 영국 신문에 '왕의 무덤을 여는데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저주에 걸려 죽는다'는 경고를 한 소설가 매리 코렐리는 단숨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무덤을 직접 열은 카터씨는 17년이 지난 1939년이 되서야 65세의 나이에 자연사로 사망하였고, 카터씨과 함께 무덤을 들어가본 카나본 경의 어린 딸 에블린 허버트는 1980년이 되서야 사망을 하였습니다.

당시 '7주일내 사망을 할것이다'라는 소문이 돈 투탕
카멘의 부검의 데리 박사는 1969년에 자연사로 사망
하였고, 카터씨에게 저주의 문양을 해석해준 알랜 가디너 역시 1963년에 자연사로 사망하였습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된 10년내 공식적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는 모두 8명이라고 하나, 이는 당시 카터씨을 도운 수백여명의 이집트인들을 뺀 숫자 였습니다.



(그림설명: 무덤에서 발굴한 보물을 옮기는 발굴작업원들의 모습)

오늘날 투탕카멘 왕의 저주를 해석한 학자들은 가장 먼저 사망한 카나본 경이 직접적인 저주의 피해를 입었을 확률이 높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직접 무덤을 연 하수인들에게 벌을 주지 않고 이를 명령한 사람에게 저주를 내렸다는 투탕카멘 왕의 저주에 관한 이야기는 과연 사실일까요?






(c) 웹진 괴물딴지 1999-2010.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