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의 식인종 알프레드 팩커는 누구였나



(그림설명: 알프레드 팩커의 모습)

19세기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알프레드 팩커는 1842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골의 작은 농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팩커는 성인이 된뒤 구두수선 기술을 배워 도시로 진출하려고 했으나, 그는 갑작스레 발생한 남북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간질병이 있던 그는 몇번의 전투에 참가한뒤 군에서 제대하였고, 그후 마을의 방위군인으로 활동하던 그는 똑같은 병 때문에 해직 당하게 됩니다.

서부로 가는 마차에 올라타 금을 찾으러 콜로라도로 이주하게 된 팩커는 1873년 금을 찾겠다는 허황된 꿈만으로는 풍족한 삶을 살수없다는 것을 깨닫고 유타주와 콜로라도주에서 관광가이드로 활동을 합니다.



(그림설명: 감옥에서 찍은 팩커의 증명사진)

1873년 11월, 유타주에서 21명의 금을 찾는 사람들을 콜로라도주로 안내한 팩커는 가이드인 자신이 지리를 몰라 엉뚱한 지방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실수를 연발 하였고, 3개월이 지난뒤에야 콜로라도주의 경계선에 도착한 그의 실수를 크게 질책한 사람들은 유타주의 인디안 보호구역에서 잠시 머물다 심한 눈보라를 만나 그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게 됩니다.

하지만 팩커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가면 금광이 있다는 말을 하였고, 그의 말에 귀가 솔깃했던 5명의 관광객들은 보호구역의 인디안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팩커와 함께 눈보라 속으로 여행을 떠나갔습니다.

그후 66일동안 사라졌던 팩커는 콜로라도주의 깊은 산속 에서 혼자 걸어나왔고, 마을에서 그를 조사한 보안관 들은 그의 몸에 5명의 실종된 관광객들이 지니고 있던 이주 정착금과 그들이 소지했던 소지품들이 있는것을 발견하고 관광객들의 행방을 추궁하게 됩니다.



(그림설명: 1996년 팩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보안관 사무실에 불려와 본격적인 심문을 받던 팩커는 4명의 관광객들이 여행을 하다 동사하자 굶어죽지 않으려고 그들을 먹었다는 자백을 했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여행객 샤논 벨은 그와 다투다 사고로 죽어 그를 잡아먹었다는 끔찍한 증언을 하였습니다.

팩커를 묶어 말에 태우고 현장검증을 한 보안관들은 5명의 관광객들이 동사를 한것이 아니라 잔혹하게 살해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팩커를 투옥하였으나, 팩커는 그날밤 교묘하게 감옥문을 열고 탈주하게 됩니다.

아리조나주로 도주한 9년뒤 유명한 술집에서 도박을 하다 거액을 따게된 팩커는 큰 웃음소리를 내다 그의 특이한 웃음 소리를 알아들은 전직 보안관에 의해 잡혔고,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재심에서 40년형으로 감형되어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5년뒤 특심을 거쳐 가석방된 팩커는 콜로라도주로 이주 한뒤 평범한 농부로 여생을 살았으며 그는 60세가 넘은 1907년에 자연사로 생을 마감 하였습니다.



(그림설명: 패커 뮤지컬 영화의 한장면)

금광촌으로만 알려져있던 콜로라도주를 전국에 널리 알린 악명높은 팩커의 이름은 현재 놀랍게도 콜로라도 대학의 식당이름(알프레드 팩커 그릴)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가 살인을 저지른 산골은 관광명소로 바뀐뒤 현재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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