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을 방문한 나치 독일의 친위대원들 이야기



(그림설명: 나치 독일의 친위대장이었던 하인리히 히뮬러)

1997년 5월, 헐리우드에서 오스트리아 산악인으로 잘 알려진 하인리히 하러의 자서전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게된 오스트리아의 언론인 제랄드 레너씨는 '과거 엘리트 SS 대원이 1953년 사실을 왜곡하여 저술한 자서전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과거를 모르는 후세가 그의 행적에 관한 오해를 할수 있다'며 하인리히 하러에 관한 80페이지 분량의 과거 SS 친위대 시절 기록을 언론에 공개하였습니다.

'티벳에서의 7년'이란 이름으로 공개된 하인리히 하러의 영화는 삽시간에 전세계에서 긍정적인 호평을 받으며 세계인들이 티벳에 관한 관심을 가지게 하였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랄드 레너씨는 하인리히 하러가 과거에 SS 대장이었던 하인리히 히뮬러와 히틀러 총통이 직접 티벳에 투입한 나치 SS의 스파이였다는 엄청난 사실을 공개하게 됩니다.

제랄드 레너씨가 공개한 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림설명: 달라이라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하인리히 하러)

1933년 10월, 독일의 스터마브테이렁 보병사단에 배치된 하인리히 하러는 좋은 집안 배경과 오래전부터 유명한 산악인으로 알려진 덕에 군 상관들의 총애를 받으며 요직에서 근무하였고, 1938년 3월 그가 독일군 내에서 등산에는 제일이라는 기록을 접한 히틀러는 그를 직접 집무실로 불러 SS 대장이던 히뮬러에게 그를 친위대로 편입시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어려서부터 등산을 자주 다닌 히틀러는 하인리히 하러를 총애하며 1939년 다른 SS 대원과 함께 히말라야를 방문 하여 티벳에서 고대 아리안 혈통의 뿌리를 찾고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의 동태를 살피라는 특명을 내리게 됩니다.

1939년 인도에 도착하자 마자 영국군에게 붙잡힌 하러의 SS 일행은 포로수용소에 5년간 수감이 되었다가 그를 붙잡고 있던 영국군이 하러가 과거에 저지른 전범 행위에 관하여 심문하자 1944년 수용소를 탈출하였고, 하러는 그후 티벳에 도착하여 은둔생활을 하다 1946년 당시 13살이던 달라이 라마의 지도 교사가 됩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유럽을 뒤흔들던 전범재판을 피해 티벳에 머무르던 하러는 1951년 그를 심문하기 시작한 중국군을 피해 티벳에서 도주한뒤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또다른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림설명: 티벳의 군인과 대화를 나누는 하인리히 하러)

전범재판의 수사가 수그러든 1953년 오스트리아에서 돈을 벌기위해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자서전을 발간한 하러는 전쟁기간중 그의 친위대 행적을 알고있던 사람 들이 전범 재판소에 신고해 오스트리아에서 현상수배가 되었고, 그는 1954년 UN의 전범 수사대에 잡혔으나 그의 자선전이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여론이 하러를 동정하여, 그는 재판이 무기한 연기된뒤 무혐의로 일단 풀려나게 됩니다.

1997년 과거에 나치 SS 대원들이었던 노인들은 법망을 피해 수십년간 은둔생활을 해온 하러를 비난하고 그가 독일에서 SS 대원이었던 1930년대 많은 사람들을 직접 처형했다는 증언을 하였고, 이를 접하게된 하러는 자신이 과거 나치의 SS 대원이었다는 점 자체를 완강히 부인 하다 제랄드 레너씨가 공개한 자료를 접하고 끝내 자신이 SS 대원이었다는 점을 시인한뒤 과거가 부끄럽다며 자신이 전쟁중 해를 입힌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를 한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위의 스캔들이 일반에 알려지기전 매년 달라이 라마를 방문했던 하러는 현재 전범 재판소에서 내린 출두명령을 피해 현재 유럽의 알수없는 지역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설명: 영화가 나온뒤 사진을 촬영한 하인리히 하러)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는 하인리히 하러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과거에 자신이 나치였다는 회상을 하며 이를 부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하인리히 하러의 자서전 원본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하지 않는으며 이 대목은 그의 캐릭터를 미화 시키려한 헐리우드의 제작진들에 의해 삽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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