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에게서 연합군이 빼앗은 성창이란 무엇인가?





(그림설명: 현재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한 박물관에 보관중인 8세기에 복제된 성창)

운명의 창, 또는 성창이라고 불리우는 2000년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몸을 찌르는데 사용되었다는 로마 군인의 창은 현재 세상에 남아 있을까요?

1912년 9월 오스트리아의 호프벌그 박물관에서 젊은 화가로 일하던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과 사제지간 이었던 월터 스타인 박사와 함께 박물관에 새로 도착한 진품들을 구경하다가 성창의 진품이라는 보물을 접하게 됩니다.

후에 책을 저술한 월터 스타인 박사는 당시 히틀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저술하였습니다.



(그림설명: 나치즘이 성창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는 주장을 하는 저서)

'아돌프가 처음으로 성창을 보았을때, 아돌프는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할 정도로 성창 앞에 오랫동안 서있었어.'
'그 후로 아돌프는 박물관에서 화가 일은 하지않고 성창만을 보고 있었고, 그는 계속 나에게 그 창이 실제로 사람의 운명을 바꿀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였 지만 나는 매번 그것은 알수 없다는 대답을 해줬어.'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았던 전성기때 처음으로 성창에 관한 발언을 했던 그는 스타인 박사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하게 됩니다.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성창만을 바라보고 있었지.
난 그때 내 주위에 누가 있든지 간에 전혀 상관하지 않았어. 그 창은 이상하게 꼭 무슨 뜻이 숨어있는것 같이 내 관심을 끌었지. 나는 그 성창이 언젠가 내가 꼭 한번 잡아 봤던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내가 다른 역사에서 그 성창을 잡고 세계의 운명을 바꿔보려고 한, 그때 그 느낌이 꼭 다시 살아나는것 같았어.'


(그림설명: 미국의 베스트셀러였던 서적 '운명의 창'의 첫번째 책)

1938년 3월, 독일의 총통으로 군림하였던 히틀러는 가장 먼저 호프벌그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던 성창을 자신에게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당시 독일 군은 성창을 나치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던 누렘버그로 가져오게 됩니다.

1945년 4월 30일 2시 10분, 지하 방공호에 보관되던 성창은 베를린을 공격한 미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로부터 1시간 20분뒤인 3시 30분, 히틀러는 자살을 하게 됩니다.

독일의 지하 벙커에서 엄청난 규모의 금은보화와 성창을 함께 찾아낸 미국의 패튼장군은 그후 성창을 진품이라고 판단한뒤 오스트리아의 호프벌그 박물관에 다시 인계를 했습니다.



(그림설명: 미국의 베스트셀러였던 서적 '운명의 창'의 두번째 책)

히틀러가 총통 재임기간중 손에 쥐고있던 성창은 과연 진품이었을까요?

그렇다면 히틀러는 고대 성창의 힘을 빌어 무서운 독재자로 군림을 할수 있었던 것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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