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추진하려다 실패한 나찌의 종교화 계획 공개



(그림설명: 파티에서 게르만 민족의 조상인 고대 튜턴족의 구리점을 치고 있는 히틀러의 모습)

1939년 1월 1일 독일의 유럽 침공을 앞두고 군의 장성들을 불러모아 성대한 신년파티를 열게된 아돌프
히틀러는 '튜턴족의 게르만에 영광이 있으리'라는 축배를 올린뒤, 파티의 참석자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말 없이 의자에 앉아 고대 튜턴족이 행하던 구리점(구리를 녹여 테이블에 부은뒤 쇠가 굳는 형상을 보고, 뾰쭉한 지점에 자신이 궁금해 하는 문제가 쓰여진 종이를 펼쳐놓아 뾰쭉한 구리가 가리키는 곳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여기는 점)을 치게 됩니다.

히틀러가 무엇을 하는것인지 짐작을 할수없던 파티의 참석자들은 모두 침묵을 하며 그를 지켜보다 갑자기 그가 테이블에 놓여진 쇠를 보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아하! 다시 한번 폴란드!'라는 말을 한뒤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히틀러가 국가의 안위가 좌우되는 중대한 결정을 구리점에 의해 선택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목격한 참석자들을 경악케 합니다.

당시 파티에 참석했던 독일의 기갑부대장 롬멜장군은 파티가 끝나기전 SS의 우두머리 히뮬러에게 '총통이 오늘 술을 너무 많이 먹은게 아니냐'는 발언을 했다가 그 자리에서 연행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림설명: 미신으로 나치당을 시작할때 사용한 깃발을 새 깃발에 문지르는 히틀러의 모습)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후 히틀러의 오른팔 인 친위대 SS의 우두머리 히뮬러는 17세기 독일에서 가장 크게 번성했던 비밀조직 기사단을 다시 부활 시켜, 친위대 속에 또하나의 친위대를 만들어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한뒤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 파티에서 히틀러가 미신적 행위를 하는것을 목격한 군 내부의 반 히틀러 비밀조직은 히틀러가 미신을 믿는다는 사실을 영국의 MI5에 제보하여 1939년 겨울 베를린에 뿌려진 전단에 '이게 너희
우두머리가 나라를 끌고가는 모습'이란 제목과 함께 우수꽝스럽게 그려진 히틀러가 쇠를 부어 '게르만' 이라는 글자를 만드는 모습을 기재하게 됩니다.

후에 자신의 심복들중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히틀러는 히뮬러에게 장성들의 뒤를 샅샅이 조사하여 자신을 배반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을 색출하라는 특명을 내리게 되지만, 히뮬러는 피의 맹세를 한 장성 들중 누가 첩자라는 사실을 즉시 가려내지 못하게 됩니다.

1940년 6월 히틀러의 아프리카 침공 계획 명령에 따라 아프리카 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한 롬멜장군은 탱크에 모래가 끼어 자꾸만 고장이 나고, 괴링이 지휘하는 공군이 출격을 늦추고 제때 폭격을 하지않아 많은 사상자가 생기는것에 커다란 불만감을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며 롬멜장군은 '누구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구리를 뿌리고, 누구는 뜨거운 사막에 물 한방울 없이 적의 포탄에 맞서 싸우는 동지들이 산화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앉아있어야 하는가'라는 담화문을 아프리카 전선의 군인들에게 발표하여 친위대의 히뮬러에게 뒷조사를 받기 시작 합니다.



(그림설명: 1932년 구리점에 의해 히틀러가 디자인한 폭스바겐 승용차와 세계최초의 고속도로)

1941년 히틀러는 고대 튜턴족이 믿던 전설적인 백색 인간의 무리 아리안의 교리를 앞세워 자신의 존재를 총통에서 성직자로 바꾸고 나치 시스템을 종교로 만든 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으며 그의 친위대는 그때부터 독일시민들의 세금을 가치없는 종교신전을 짓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1944년 7월 3일, 아프리카 전선을 총 지휘하던 롬멜장군의 기갑부대가 연합군의 특공대와 폭격에 의해 아프리카 작전에서 사용해야 할 모든 연료를 몽땅 잃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된 히틀러는 연료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롬멜에게 엄청난 질책을 가하였으며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히틀러 에게 보고한 한 롬멜은 7월 4일 보고서를 제출키 위해 출발할 자신의 정보참모들을 시켜 7월 20일 베를린의 히틀러 정보 벙커에 폭탄을 폭파시켜 총통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쓰러져가던 독일의 소련전선과 아프리카전선에 관련된 모든 군사회의와 전쟁의 진행상황을 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히틀러의 정보벙커는 1944년 7월 20일 히틀러가 도착하기 6분전 원인을 알수없는 강력폭탄에 의해 고급장성 수십여명의 사상자를 내며 벙커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으며 곧장 수사에 착수한 친위대는 폭탄이 터지기전 급히 벙커를 빠져나간 사람들이 아프리카 전선 롬멜의 정보참모들인 것이 밝혀지자 즉각 롬멜을 체포 하게 됩니다.

아프리카를 방문한 히뮬러는 당시 체포된 롬멜에게서 1939년 영국의 MI5에 히틀러의 구리점에 관한 제보를 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자백을 받았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가문에 먹칠하고 당신과 관련된 모든 가족 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싶은가, 아니면 이 약을 먹고 자살하겠는가'라는 말을 들은 롬멜은 베를린으로 이송하는 도중 약물을 먹고 자살을 하고 맙니다.

당시 독일 시민들은 국가의 영웅인 롬멜장군이 적의 흉탄을 머리에 맞아 사망 하였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고, 그의 사망에 관한 진실은 1951년에 발견된 SS의 비밀문서에 의해 밝혀지게 됩니다.



(그림설명: 전쟁중 독일의 최고급 장성들이 비밀회의를 가진 17세기 게르만 기사단의 요새 모습)

롬멜의 배신에 의해 자신의 핵심 브레인인 고급정보 참모들을 잃은 히틀러는 그때부터 부하들에게 전혀 자신감이 없고 무능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1945년 이태리 군중들에 의해 처참하게 처형된 무솔리니의 사진을 접하게 된 히틀러는 참모들에게 자신도 살아있을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과연 1940년대초 수천만 프랑의 자금을 들여 복구된 17세기 게르만 기사단의 신전들과 상징물 들은 히틀러가 꿈꾼 나치즘의 종교화를 위해 설립된 건축물들 이었을까요?

혹시 현재 '완성단계에서 수포로 돌아갔다는 나치즘의 종교설'은 얼마전 베를린에 폭탄 테러를 한 독일인 들이 믿고 있다는 비밀종교의 실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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