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떨어진 원자탄은 히틀러의 폭탄이었다?



(그림설명: 라이너 칼쉬씨의 저서 '히틀러의 폭탄')

2005년 3월 14일 독일의 스피겔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최초로 원자탄을 개발했고 초보적인 원자탄 실험을 세차례나 했다고 주장한 역사학자 라니어 칼쉬에 관해 보도했다.

칼쉬 박사는 1945년 6월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6명의 미래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해 12만 5천명의 연인원이 동원되고 프랑크푸르트시 넓이의 우라늄 농축 플렌트를 갖춘 보안구역에서 300억불 상당의 비용을 투입했다는 것에 비해 나치는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과 몇명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원자탄을 개발했다는 기이한 지론을 폈다.

'히틀러의 폭탄'이라는 책을 저술한 칼쉬 박사는 과거에 나치 과학자들과 군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1944년에 류겐섬에서 첫 원자탄 실험이 시행됐고 1945년 3월 투링기아에서 두번째와 세번째 실험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7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기술했다.

칼쉬씨는 동독의 정보기관 스타시가 1960년대에 투링기아 주민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그곳에서 작은 원자탄 폭발 실험을 자행했다고 주장해 조사했다고 밝혔는데 당시 주민들은 투링기아에 있는 나치 친위대의 안전한 금고에 두개의 완벽히 제조된 원자탄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그 폭탄들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음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림설명: 루이지 로메르사씨의 책 '히틀러의 비밀 크루')

지난 9월 30일 영국의 가디안 언리미티드는 자신이 1944년 10월 12일에 행해진 분열탄(원자탄) 실험을 공식 참관한 마지막 생존자라고 주장한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기자 루이지 로메르사(88)씨에 관해 보도했다.

나치가 전세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탄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히틀러에게서 직접 듣고 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오라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명령을 받고 발트해 해상의 류겐섬 신종 폭탄 시범폭발 참관인으로 초대받은 그는 '분열탄'이라고 불리우는 신무기를 직접 목격하고 그곳에서 행해진 폭발 실험을 목격했다고 한다.

두꺼운 방탄 유리가 설치된 콘크리트 벙커 안에서 특수 고글을 착용하고 원자탄 폭발 광경을 직접 참관한 그는 벙커가 흔들리는 것을 느낀 즉시 거대하고 강렬한 섬광이 비추며 거대한 꽃 같은 연기 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는데 담당 장교의 안내로 참관자들이 특수 석면 옷으로 갈아입고 몇시간 후 벙커에서 나와 수킬로미터 떨어진 폭발 지점으로 이동한 그는 폭발로 인해 모든 생물이 다 죽었고 오직 탄소로 변한 나무만 앙상히 서 있있는 것을 목격했으며 현장에 있던 양들을 비롯한 동물들이 모두 분해된 듯 사라졌다고 증언했다.



(그림설명: 루돌프 헤스가 직접 조종한 BF-110 폭격기)

만약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전쟁사를 다시 써야한다는데 현재까지 역사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수년의 연구 끝에 1945년 7월 16일 이른 아침 미국 뉴멕시코 화이트센드 미사일 시험장에서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가 지휘한 세계 최초의 원자탄의 폭발 실험이 시행됐고 8월 3일 '리틀 보이'라고 명명된 원자탄이 세계 최초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됐으며 3일후인 8월 6일 '팻 맨' 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미국이 사용한 이 3발의 폭탄이 나치가 제조한 원자탄이라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1945년 5월 7일 나치독일이 무조건 항복하여 유럽전쟁이 끝난 후 어떠한 특별한 이유와 경로를 통해 그들이 보유했던 원자탄이 미국으로 옮겨졌다고 봐야 하는데 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현대의 최대 미스테리 가운데 하나인 나치 독일의 부총통 루돌프 헤스의 망명 사건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1941년 5월 10일 스코틀랜드에서는 히틀러의 1급 참모이며 나치의 2인자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루돌프 헤스가 미스테리하게 스코틀랜드 이글스햄에 나타난 사건이 발생했다. 역사에 따르면 헤스는 나치와 영국간의 비공식 평화협정을 논의하기 위한 비밀 임무를 띠고 직접 단독으로 쌍발 폭격기를 몰고 이글스햄까지 장거리를 날아왔는데 그는 독일의 대공망이나 요격기들에게 격추되지 않고 영국땅을 밟았다는 것이다.

헤스는 연합군 고위층과 회담을 한 후 정신병자로 낙인찍혀 런던타워에 갇힌 뒤 여러 감옥으로 옮겨졌고 전쟁이 끝난 후 전범재판에서 종신형을 받고 1987년까지 감옥에서 생활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1941년 당시 연합군 대표들과 무슨 대화를 나눴고 어떤 일이 진행됐는지 비밀에 붙여졌고 그가 왜 정신병자로 낙인찍혔는지는 6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일부의 추측은 당시 히틀러의 밀명을 받고 스코틀랜드로 비행한 헤스가 독일의 막강한 신기술과 신무기 현황을 낱낱이 공개하며 전쟁이 계속될 시 분명히 나치가 이기겠지만 신무기가 너무 강력하고 끔찍해 유럽이 회생 불능 상태로 파멸될 위혐성이 높아 이를 유럽전선에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나치 패망 직전에 모종의 타협이 이루어지고 극비의 인력과 기술, 장비 등 인계인수가 이루어 지면서 이때 미국으로 이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리다.

이같은 설을 뒷받침하는 많은 사진들과 함께 각기 다른 버젼의 나치의 원자탄 관련 음모론이 인터넷, 소설, 영화 등으로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등장해 수많은 논쟁과 의문을 만들고 있다.



(그림설명: 하게르로흐 지하 동굴에 제조된 원자로 스케치)



(그림설명: 1945년 4월에 촬영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박사의 원자로)



(그림설명: 하이젠베르크 박사의 원자로 중수 공장)



(그림설명: 루이지 로메르사씨가 실험을 참관했다는 콘크리트 벙커의 현재 모습)



(그림설명: 1944년 10월 12일 아침 11시 45분에 행해진 원자탄 실험 사진)



(그림설명: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맨 원자탄에 독일 공군의 표준 경고 메시지인 'G(Gerfhar)'와 화살표가 페인트된 모습이다)



(그림설명: 나가사키에 투하되는날 촬영된 팻맨이다. 밝은 노란색 페인트와 브라운색 페인트를 덫칠했다)



(그림설명: 나치의 올리브 녹색 원자탄을 히로시마로 향하는 에놀라 게이(B-29)에 선적하기 전에 파란 색으로 덫칠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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